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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공유드릴 주제는 1971년 1월 23일에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하이재킹 사건을 다뤘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항공 보안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건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함께 그날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고 전 촬영된 해당 기체

사건 개요: 하이재킹의 서막

1971년 1월 23일, 강원도 속초 공항에서는 전날까지 이어진 폭설로 인해 이틀 만에 비행기가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대한항공의 F-27 여객기에는 총 65명의 승객과 5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있었습니다. 비행기는 고도 10,000피트 상공에 다다랐고, 승무원들이 음료 서비스를 막 마쳤을 때,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납치범인: 김상태 (당시 22세)

 

항공 보안관의 등장과 납치범의 출현

 비행기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한 남자는 천천히 앞쪽으로 걸어가며 자켓 안의 권총을 확인했습니다. 이 남자의 정체는 항공 보안관 최천일이었습니다. 당시 여객기마다 항공 보안관이 탑승해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던 하이재킹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날 최천일 보안관의 임무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 남자가 갑자기 폭탄을 꺼내 들며 비행기를 북쪽으로 납치하려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기장 이강헌은 기지를 발휘해 북쪽으로 가는 척하면서 시간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치열한 기내 싸움과 영웅의 희생

기장 이강헌은 납치범을 안심시키기 위해 비행기를 북쪽으로 돌리는 척하며 강릉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납치범은 이를 눈치채고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 순간, 공군 전투기가 나타나 비행기 주변을 에워싸고 위협 사격을 하자 납치범은 더욱 흥분했습니다.

 

기장 이강헌은 "우린 이미 휴전선을 넘었다. 저건 북한 전투기다"라고 납치범을 속였고, 그 순간 최천일 보안관이 납치범을 사살했습니다. 그러나 납치범이 던진 폭탄이 터지면서 수습 조종사 전명세가 자신의 몸으로 폭탄을 막아내며 희생되었습니다.

'하이재킹' 스틸컷

긴박한 비상 착륙과 승객들의 생존

 비행기는 결국 강릉 근처 해안에 비상 착륙했습니다. 이로 인해 중상 5명, 경상 1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유일한 사망자는 납치범뿐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한 지점에서 휴전선까지의 거리는 불과 10km로, 정말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습니다.

 

사고 후 해당 기체의 잔

 

사건의 여파와 영웅들의 명예

전명세 조종사의 영정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보안 검색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건 이후 승무원 전원에게 보국 훈장이 수여되었고, 특히 자신의 몸을 던져 폭탄을 막은 전명세 수습 조종사의 희생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납치범의 정체는 22세의 김상태로 밝혀졌지만, 왜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큰 형이 한국전쟁 직전 월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론: 영웅들의 희생과 기적적인 생존

 

이날의 사건은 전 세계 하이재킹 사건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적적인 생존율을 기록했습니다. 모든 승무원과 승객들이 힘을 합쳐 극적인 상황을 이겨낸 덕분입니다. 특히, 항공 보안관 최천일과 수습 조종사 전명세의 희생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냉정함과 용기를 잃지 않고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 이야기를 통해 용기와 희생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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